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 사르코지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사실 사르코지(Sárközy de Nagy-Bócsa, 샤르쾨지 드너지보처) 가문은 [[프랑스]]가 아니라 [[헝가리]]의 귀족이었다.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끝나고 [[소련군]]이 헝가리를 점령하면서 가문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고, 사르코지의 아버지 팔 이슈트반 에르뇌 샤르쾨지 드너지보처(Pál István Ernő Sárközy de Nagy-Bócsa)[* [[프랑스인]]으로 귀화한 이름은 폴 사르코지 드나지복사(Paul de Sarkozy de Nagy-Bocsa)]는 여러 나라를 거쳐 프랑스로 넘어와 [[프랑스 외인부대]]에서 5년간 근무하면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. 어머니인 안드레 말라는 프랑스인이다. [[1974년]] [[프랑스]]의 정당인 [[공화국민주연합]](UDR)[* 현재 [[프랑스]]의 [[야당]]인 [[공화당(프랑스)|프랑스 공화당]]의 전신.]에 가입하고 [[1981년]] [[변호사]]가 되었다. 그리고 [[1983년]] 뇌이 쉬르 센(Neuilly-sur-Seine) [[시장(공무원)|시장]]에 당선되었다. 그 후 [[1993년]] 뇌이 쉬르 센에서 [[국회의원|하원의원]]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, [[1997년]]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하였으나 [[1999년]] [[유럽의회]](EP) 의원으로 당선되어 [[2004년]]까지 유럽의회 의원으로 재직하였다. [[2002년]]부터 시라크 정부의 [[프랑스 내무부|내무장관]],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강력한 치안 정책과 과감한 경제개혁을 주장하며 주목받았다. [[2005년]] 파리 교외 소요 사태 당시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공격을 받았다. 자신도 이민 2세이면서 이민자들에 적대적인 정책을 펼쳐 비난받기도 했다. [[2007년]] [[프랑스 대통령]] [[선거]]에 출마하여 [[프랑스]] [[사회당(프랑스)|사회당]]의 [[세골렌 루아얄]] 후보를 꺾고 5년 임기의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. [[2008년]] [[리만 브라더스]]의 파산으로 시작된 경기침체와 [[2010년]]부터 시작된 [[그리스]], [[포르투갈]], [[스페인]], [[아일랜드]], [[이탈리아]] 등 PIIGS [[국가]]들에서부터 시작된 [[유로]]존 붕괴 위기에서 [[앙겔라 메르켈]] [[독일 총리]]와 '''하루가 멀다 하고''' 붙어다녀 '메르코지'라는 말을 유행시켰다. [[2012년]]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였으나, 사회당의 [[프랑수아 올랑드]]에게 1차 투표에서는 28.6% 대 27.1%로 졌으며, 2차 투표에서도 48.3%로 51.7%의 올랑드에게 3.4%, 110만표차로 졌다.[* 그나마 예상보다는 적게 진 것이었다. 여론조사에서는 최대 55%대 45%까지 벌어졌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지만 막판 숨은 보수표의 결집으로 그나마 48%까지 끌어올린것.] 임기중 사망한 퐁피두(4년 10개월, [[1969년]]~[[1974년]])와 [[프랑수아 미테랑]]에게 진 [[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]](7년 재임)에 이어 '''30년만의 단임 대통령'''이라는 오명을 쓰면서 퇴임했다.[* 프랑스에서 구조상 자력으로 14년 임기를 마친건 미테랑 정도고, 시라크 역시 동거정부를 운영했던 리오넬 조스팽 총리에게 이길 수 있던 이유는 1차 투표에서 좌파 후보 난립으로 사회당 조스팽이 간발의 차로 극우파 [[장 마리 르 펜|르 펜]]에게 지면서 좌파 표가 모조리 시라크에게 쏠렸다.] 전임 대통령인 시라크까지 올랑드 지지를 선언하면서 사르코지는 완전히 고립무원이 되었고, 여기에 카다피 사건에 대한 몇몇 불편한 진실까지 드러난 게 결정타가 됐다. 그래도 예상보다는 적은 표차로 졌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. [[2013년]] 프랑스 검찰은 사르코지를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기소했다. 대통령 선거 전에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의 사주로부터 정치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받았다는 것. 보통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내란이나 외환 관련 범죄가 아니면 재임시절 형사소추가 안 되니 검찰이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도 사르코지가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달려들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. 영부인이었던 브루니는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고 한다. [[IMF]] 총재 [[크리스틴 라가르드]]가 사르코지에게 충성 맹세 편지를 보낸 것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1&aid=0006324147|#]] 청탁성 편지를 권력자들에게 보내는 것 자체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어온 일이지만, 문제는 내용이 그야말로 절대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출세를 청원하는 신민급이었다는 것이다.[* 프랑스 대통령이 과거의 황제와 비견될 정도로 권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,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지위는 국민의 대표자이다. 그런 대통령을 절대군주에 비유한 편지를 보내고 대통령이 그걸 보낸 사람을 지원해줬다는 것 자체가 사르코지의 권력에 대한 인식 및 리가르드 총재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.] 대통령 퇴임 후 당연직 위원으로 재직하던 [[프랑스 헌법위원회]] 위원직을 2013년 사퇴함으로써 정계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. 헌법위원은 정치활동이 불가능하기에 이런 해석이 가능했다. [[2014년]] 11월, 대중운동연합의 대표로 취임했다. 프랑스 대통령직은 재선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단임으로 5년 더 할 수 있다는 걸 이용하려는 듯하다. 그리고 올랑드 정권의 지지율 폭락에 맞춰 대권 탈환을 준비중인데 먼저 이미지 쇄신을 위해 당 이름을 [[공화당(프랑스)|공화당]]으로 바꿨다. 정작 국민들은 사르코지가 '공화국'의 이념을 사유화하려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.[[http://news.nate.com/view/20150531n16803|##]] [[2015년]] 10월 29일에는 서방 국가들이 [[러시아]]에 대한 고립을 중단하고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와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hm&sid1=104&oid=421&aid=0001708278|#]] [[2016년]]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으나, 1차 경선 결과 사르코지 밑에서 총리를 지냈던 [[프랑수아 피용]]이 1위, 보르도 시장인 알랭 쥐페가 2위를 차지하면서 3위에 그쳐, 깊은 내상을 입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hm&sid1=104&oid=001&aid=0008836527|#]] 그리고 대선불법자금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hm&sid1=104&oid=001&aid=0009015259|#]] 2019년. 프랑스 최고법원인 파기법원(Cour de cassation) 재판부는 이날 사르코지 측이 기소 결정이 부당하다면서 제기한 기소 파기 신청을 기각하고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냈다고 발표했다.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01/0011115848|#]] [[리비아]]의 [[무아마르 카다피]]에게도 [[https://www.businesslive.co.za/bd/world/europe/2018-03-20-frances-sarkzy-in-custody-over-suspected-libyan-political-financing/|500만 유로를 받은 혐의]]로 조사 중이다.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23&aid=0003569251|#]] 2023년 10월이 돼서야 입건되었다.[[https://m.yna.co.kr/view/AKR20231006177400081?section=international/all|#]] 2021년 3월 1일. 판사 매수 혐의로 집행유예 2년을 포함해 징역 3년형을 내렸다.[[https://www.yna.co.kr/view/AKR20210301081500085|#]] [[프랑스 제5공화국]] 출범 이후로 부정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직 대통령은 사르코지가 역사상 최초다. 이때문에 프랑스 언론에서는 이 판결을 '역사적 사건'으로 표현하기도 했다. 2023년 5월. 2심에서도 동일한 집행 유예 2년을 포함한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.[[https://m.yna.co.kr/view/AKR20230517153000081?section=international/all|#]] 또한 상기 건과 별개로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법 선거 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. 검찰에서 지난 1월부터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혐의도 들여다보고 있고 있어 추가 기소 가능성도 크다.[[https://www.yna.co.kr/view/AKR20210930180000081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